2014년 6월 1일 일요일

미국아트스쿨 출신의 유명 한국인들 (리즈디 / RISD, 파슨스 / Parsons, 프랫 / Pratt, 칼아츠 / CalArts) – 미술유학/디자인유학

미국아트스쿨 출신의 유명 한국인들 (리즈디 / RISD, 파슨스 / Parsons, 프랫 / Pratt, 칼아츠 / CalArts) – 미술유학/디자인유학

이 자료는 유학미술나비스쿰에서 제공합니다.



서도호 (Do-Ho Suh / 리즈디 RISD: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서도호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후,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과 예일 대학교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독창적이며, 흥미로운 개념의 정교한 조각, 설치, 영상 작업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2001 49회 베니스 비엔날레와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참여하였고,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헤이워드 갤러리, 도쿄 현대미술관, 모리미술관, 서울 리움 삼성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서도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것은 어린 시절 집에 살던 한옥을 부드러운 천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서도호의 부친은 한국화의 거장 서세옥이다. 부친은 마당에 조선 왕조의 궁궐 창덕궁의 연경당을 본 따 한옥을 지었고, 아들은 그것을 정서적인 원천으로 삼아 작품을 만들었다. 한옥과 관련된 한국의 전통 문화는 집의 외형만이 아니라 그의 미감에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투명한 집의 껍데기들은 환영처럼 전시장 안에 떠 있다. 그 투명성은 한옥의 창호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서도호는 유학 초기, 서울과 미국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로 인한공간의 급격한 변화와 이로 인한 불편하고 낯선 감각을공간의 이동과 전치(displacement)’의 개념으로 작품화하였다. 작가는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 공간의 구석구석의 정확한 수치를 꼼꼼히 측정하고, 마치 맞춤옷을 입히듯 정교하게 천으로 떠내는 작업을 통해 개인에게 친숙한(껍질) 같은 공간’, 차곡차곡 접어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이동 가능한 공간으로서의을 선보였다.1999년 로스앤젤레스 한국문화원에서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던 <서울집/L.A.>은 작가가 한국에서 살았던 성북동의 전통 한옥 형태를 옥색 한복천(은조사)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작품으로, 태평양을 가로질러 LA 한 복판으로 옮겨진공간()’을 통해 특정 지역과 위치에 고정된 공간의 개념을 초월하여, 시공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는유목적인 공간(Transcultural displacement)’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의 역사적인 개관을 기념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 작가로 서도호(1962~)를 선정하였다. 이 프로젝트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은 유리벽을 투과하는 풍부한 자연 채광이 돋보이는 서울 박스 공간의 공간적 특성과 전통과 근대, 현대식 건물이 혼합된 서울관의 역사성을 반영하여 특별 제작된 서도호의 대형 천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1년 작가의 미국 유학시절 처음 거주했던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의 3층 주택을 실물 크기(높이 12m, 너비 15m)로 재현하고, 건물의 중심엔 작가가 살았던 전통 한옥집인서울집이 매달린 형태를 지니고 있다.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한옥을 품은양옥’, ‘양옥을 품은서울박스’, ‘서울박스를 품은서울관’, ‘서울관을 품고 있는서울까지 확장되는 공간 개념을 지니고 있다.


참고자료






송욱 (Luke Song / 파슨스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송욱은 1972 12월에 서울에서 태어나서 명동에서 자랐다. 그는 1982년 부모와 함께 미국의 디트로이트 지역으로 이민을 갔다. 대학에서 처음에 생화학을 공부했지만 졸업에 한 학기를 남기고 생화학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뉴욕의 파슨스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갔다.


부모님이 더 이상 학비를 댈 수 없다고 하자, 아끼던 첼로를 팔아서 학비로 충당했다. 순수미술 의 길을 계속 추구하는데 의심이 없었지만, 학자금 대출이 부담이 되자 선택한 길이 모자였다.  프랑스의 파리에서도 작가의 길을 추구했지만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모자디자인을 하면서 모자 제조를 시작했다.


1998년에 '모자(Moza) 인코퍼레이티트'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미스터 송 밀러네리(Millinery: 여성용 모자제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만든 제품이 인기를 끌어 그의 이름을 모자 세계에 알렸고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이 밀러네리의 제품은 세계 500여 개의 부띠끄에서 팔리고 있다. 또한 그는 여러 패션 브랜드, 영화, TV, 잡지 등을 위해서도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으며, 세계의 여러 아티스트들과도 협업을 하고 있다.

송욱의 미스터 송 밀러네리는 세계의 여러 왕족들 그리고 유명인사들에게 애용되었는데 그 중에는 소울의 여왕 (Queen of Soul) 아레사 프랭클린 (Aretha Franklin)이 있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축가를 부르게 되는데, 이 때 송욱이 디자인한 모자를 쓰고 나왔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송욱이 만든 리본 모양이 크게 장식된 독특한 회색 모자를 쓰고 취임식 축가를 불렀고 이 모습은 TV를 통해 전 세계로 방송됐다.


이 모자가 세계적인 주목을 끌게 되면서 나중에 취임식 모자 (The Inaugural Hat)’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중에 아레사 프랭클린도 모자에 대한 관심이 너무 뜨거워서 놀랐다고 말을 할 정도였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이 모자를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하기로 해 더욱 유명해졌다. 이 모자는 나중에 오바마 대통령 도서관이 만들어지면 이곳에 영구 전시될 예정이다.


참고자료








정근식 (Peter Kunshik Chung / 칼아츠 CalArts: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정근식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규섭은 해군 제독 출신으로, 군 은퇴 후 튀니지 대사를 역임했고 대사 퇴임 후에는 1974년에 미국으로 이주, 워싱턴 근교 매클린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며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정근식은 어릴 적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이동하며 많은 문화를 보고 견문을 넓혔다고 회고하며, 어릴때부터 그림과 이야기를 만드는데 큰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학교를 다니던 15세 시절부터 자신만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18세에는 매릴랜드의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애니메이터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79년 칼아츠(CalArts)에 입학했고(유명 영화 감독인 팀버튼과 칼아츠 동기였다.), 신입생 때 디즈니 스타일만 가르치는 칼아츠의 제도를 무시, ‘제멋대로 작품을 내놓아 교수들에게 찍혔다. 2학년 때 실험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옮겼고, 1981년 디즈니 스튜디오에 스카웃 됐다 그러나 이내 독창성과 새로운 실험을 허용하지 않는 디즈니에 염증을 느껴 마블 프로덕션으로 옮겼다.

1991년 이온 플럭스의 시발점이 된 단편 애니메이션리퀴드 텔리비전’(Liquid Television)의 대성공으로 95 MTV 시리즈이온 플럭스’(Aeon Flux)의 감독·각본을 맡았다. 97알렉산더’(Alexander) 애니메이션 디렉터 2003애니매트릭스’(The Animatrix) 감독·각본, 04애니 리딕’(The Chronicles of Riddick: Dark Fury) 감독·각본을 거쳐 파라마운트 영화이온 플럭스’(Aeon Flux) 캐릭터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정근식의 애니메이션은 예술적으로 그리고 주제로도 실험적이며 프로그레시브 애니메이션의 예라 할만하다. 정근식의 스타일은 유럽의 표현주의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았다.
정근식의 대표작은 이온 플럭스이고 정근식이 가장 잘 알려진 것도 이온 플럭스의 작가로서이다. 이온 플럭스는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다. 공상과학 세계의 여성 비밀요원은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아주 유니크하다. 이 작품은 시청자들이 집중을 해서 보아야만 한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Rugrets C.O.P.S.처럼) 쉽게 관객들에게 소화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정근식의 작품은 오리지널하고 아주 분명하다. 그의 말처럼 정근식은 애니메이션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은 보통 이렇다고 생각하는 경계를 넘어가는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관심이 있다.”


나는 희극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정말 무언가 자극적이고, 매체의 영상 가능성을 최대한도로 사용하는 것을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나의 많은 동기는 시각적인 서사로 실험을 하고 문자 없이 이미지들을 조율하며, 이것들로부터 의미를 이끌어내어서 시청자의 경험으로부터 시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는 산업계나 여기에서 진행되는 트랜드에 별 커넥션이 없다. 기본적으로 나는 나에게 흥미 있는 영화를 만들어낸다. 나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에서 나의 개인적인 투자를 지속하려고 노력하지, 직업으로서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 애니메이션은 일이 아니라, 개인적인 노력의 예술적인 형태이다. 나는 산업계와 밀접히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해 온 방식보다 더 힘들다고 느낀다. 나는 일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애니메이션이 내 흥미를 끌지 않고, 어쨌든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애니메이션을 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자료








신진 (Jean Shin / 프랫 Pratt Institute)

신진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뉴욕에서 활동을 하는 미국 국적의 작가이다.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전공, 대학원에서 아트 히스토리로 석사를 받았다.


신진은 많은 노동이 드는 조형과정을 거쳐 버려진 물건들을 시각적으로 뛰어나고 풍부한 개념이 있는 작품으로 바꾸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진의 조각, 비디오, 그리고 설치작업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신진의 작품에는 미니멀리즘, 단일 형태의 반복, 페미니즘, 전통적 크래프트 기술 등 다양한 역사적인 사조들이 반영되어 있다.


신진이 긁어 모은 쓸모 없는 물건들 중에는 낡은 신발, 버려진 양말, 부러진 우산, 탈락된 복권, 처방 약통 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엄청난 양으로 모아 놓는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해체와 변형, 복원의 꼼꼼한 과정을 통해 이것들을 변화시킨다. 그 결과로 나타난 조형물들과 설치물들은 수백, 때로는 수천의 외견상 똑같은 물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이 다양한 의미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개별적이고 집합적인 연계를 고무시킨다.



나의 설치에서는 포커스는 끊임 없이 개별과 그룹의 정체성, 개별 단위와 더 큰 전체, 친밀과 과도함을 넘나든다. 내가 힘들여서 하는 작업과정은 이런 질적인 것을 반영하는데, 그것은 대량생산과 소비가 많은 수작업의 노동을 통해서 변형되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자료




관련정보 보러가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